금수대화록(禽獸對話錄) - 8.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놀토는 아니다. 즉, 학교를 가야 된다는 소리다. 나비가 또 날려버렸는지 방바닥에 뒹구는 자명종을 원위치로 돌려놓은 뒤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엄마의 극진한 대접으로 맛있는 아침을 먹은 나비는 역시 나를 뒤따라 학교에 가기로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나비야, 나중에 또 놀러와."

"응, 맛있는 거 많이 줘~"

"가! 가버려! 다시는 오지마!!"

아들의 인사를 무시한 엄마께서는 나비를 꼬옥 껴안으며 애정을 과시하였고 그 뒤에서는 앵무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비는 별 신경쓰지 않는 듯 내 뒤를 따라 집을 나섰다. 버릇처럼 옆집 창문을 보니 왈이 할아버지가 계셨다.

"안녕하세요?"

"그려, 그려. 그쪽의 고양이양도 반갑구려. 나비라고 했던가?"

"응, 오랜만이야."

"성진이하고는 사이좋게 지내는고?"

"놀려먹기 좋아서 재밌어, 후훗."

"이 녀석이…."

나비의 대답에 난 입술을 씰룩거리며 노려봐 주었고 왈이 할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리셨다.

"성진이하고 친하게 지내주려무나."

"그럴게, 후후훗."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나비를 바라보다 다시 왈이 할아버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왈이 할아버지는 자상한 미소를 띄우고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정말이지…, 친 할아버지같은 모습이었다.

"그럼 갔다올게요."

"안뇽~"

"잘 갔다오려무나."

왈이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우리들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갈림길에서 먼저 큰길로 발을 내딛는 나비를 따라 나도 그곳으로 향했다. 저번에 봤던 여자애 빼고는 역시 한산한 거리였다. 그렇게 별 대화없이 걷기만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시끄러운 손님이 등장했다.

"우오! 성진이다! 반가워라, 반가워. 아, 얘는 그 때 그 검은 녀석이네."

"누구야, 이 시끄러운 멍멍인?"

"아, 얘는…."

"누렁이라고 해, 누렁이. 털이 누래서 누렁이야. 넌 이름이 뭐야? 온몸이 까마니까 까망이? 아니면 검둥이?"

"…촌스러워…. 난 나비라고. 나, 비."

"그렇구나, 그렇구나. 나비, 나비, 나비. 다 외었다. 그런데 성진이하고는 무슨 관계야, …니비?"

"나비라니까! 나! 비! 바보아냐?"

나를 쏙 빼놓은 나비와 누렁이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원체 말이 많은 녀석들이었기에 둘의 대화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런데 말이지…, 나 학교가야 되거든?

수다떨고 있는 녀석들을 내버려두고 난 학교로 향했다. 그제서야 나를 뒤따라오는 나비와 누렁이. 학교 교문이 보이자 누렁이는 작별 인사를 길게 하며 가버렸고 나비만이 당당하게 학교에 입성하였다.

나비가 잘 숨은 건지 운이 좋은 건지 오늘은 추격전도 벌이지 않고 무사히 학교 생활을 마쳤다. 나비는 아쉬운 듯 보였지만 무시해버리자. 교문을 나서자 내 옆에 붙어서 가던 나비가 갑자기 속도를 올려 내 앞에서 걸었다. 그러더니 고개만 돌려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디에?"

"따라와 보면 알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막무가내로 그렇게 말하고는 혼자서 걸음을 옮기는 나비.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나비가 이상하다. 잘 걸어가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질 않나, 앞으로 가려다가 갑자기 돌아나와서 옆길로 들어가질 않나, 또 잘 가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질 않나. 마치 길 잃은 것처….

설마 이 자식?!

"너, 솔직히 말해. 지금 어디 가는지 모르지?"

"응. 뭐, 느낌대로 가는 거야."

"……."

저 황당무계한 반응에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감이 안 잡힌다. 한 대 때려? 그냥 때려버리는 게 나을까?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비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 나비의 귀가 쫑긋 거리더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나비는 자신이 발견한 장소에 들어서자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음~ 여기 좋네. 역시 내 감이 대단한 건 알아줘야해."

뻔뻔스럽게 자화자찬하는 나비를 보다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무들이 있고, 벤치들이 있고, 비둘기들이 있는 이곳은 우리 마을에서 제일 큰 공원이었다. 어릴 때 몇 번 와본 이후로는 처음으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뭐하려고?"

"글쎄? 일단 돌아다니자."

이때까진 안 돌아다녔냐? 나는 황당한 눈으로 나비를 보았지만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나갔다. 내가 여기서 어쩌겠는가. 그저 나비의 뒤를 따라가는 수 밖에 없었다.

목줄은 안 달았지만 꼬리에 하얀 리본을 묶은 까만 고양이가 공원의 길을 따라 걸어가자 몇몇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 시선에도 거리낌없이 걷고 있는 나비는 주변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 꼬마 아이 하나가 나비를 만지려는 듯 다가와 손을 내밀었지만 나비는 부드럽게 그 손을 피했고 꼬마 아이는 끈질기게 그 뒤를 쫓았다. 계속 요리조리 피하는 나비를 보다 못한 내가 결국 한 마디 하였다.

"야, 한 번쯤은 가만히 있어라."

"흥, 내가 그렇게 쉬운 고양이로 보여?"

"……."

그 뒤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난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아이의 어머니께 사과를 해야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비가 웃음을 터뜨린 건 당연지사.

소동이 끝나고 여러모로 지친 나는 휴식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에 근처 벤치에 앉았다. 나비도 벤치에 앉으려는 듯 위로 올라오더니 자연스레 내 무릎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뭐하는 짓이냐?"

"뭐 어때?"

이 녀석, 뻔뻔함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엄청 지쳐있던 나였기에 내쫓지는 못하고 얌전히 무릎을 나비에게 내주었다. 고개를 들어 멍하니 위를 보자 평화롭고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 좋구나….

오랜만의 평화를 느끼다가 고개를 내려보니 어느 새 나비가 사라져 있었다. 앞을 보니 비둘기집 아래에서 비둘기들을 쫓으며 놀고 있었다. 공원에서 비둘기를 잡아먹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쫓으며 놀 생각인 듯 했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다가 공원의 시계를 보니 어느 새 6시가 훌쩍 지나가 있었다. 더 이상 있다가는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자신을 만지려는 아이들을 따돌리며 놀고 있는 나비에게 말하였다.

"나비야, 그만 가자."

"응~ 재밌었어. 나중에 또 봐."

나비는 그렇게 말하곤 빠른 속도로 내 옆에 착 붙어섰다. 물끄럼히 바라보는 아이들은 내버려두고 우리는 공원을 빠져나왔다.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나비와 걷던 골목길이었다. 평화로운 일상에 미소를 띄며 난 나비와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로등 불빛 아래서 움직이는 물체가 포착됐다.

"앗, 인간이다!"

"숨자, 숨어."

아직 어린 고양이들이 나를 보자 눈치를 살피며 숨으려 하고 있었다.

"안녕?"

하지만 내가 인사를 건네자 동작을 멈추며 의아한 듯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인간이 우리 말을 하네?"

"신기한 인간이다."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가만히 있었다. 다가오지는 않지만 도망치지 않는게 어디야. 난 미소를 지으며 녀석들에게 더 말을 걸었다.

"엄마는 어디…."

"얘들아!"

"엄마!"

말을 하기 무섭게 녀석들의 어미로 보이는 고양이가 나타났다. 어미 고양이는 나를 경계의 눈빛으로 보며 새끼들을 지키는 듯한 자세를 취하였다.

"엄마, 저 인간, 우리 말을…."

"그만 가자, 얘들아."

"네? 그치만…."

어미 고양이는 실망하고 있는 새끼 고양이들을 매서운 눈빛으로 보며 나지막히 말하였다.

"저 인간은 '배신자'야. 그러니까 가면 안 돼. 알았지?"

"…네에…."

어미 고양이는 그렇게 새끼 고양이들을 데리고 어둠으로 사라졌다. 새끼 고양이들은 미련이 남는지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았고 나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하지만 녀석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나는 힘없이 손을 늘어뜨렸다.

문득 옆을 보니 나비가 무언가를 요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

나는 그 눈빛에 아무것도 대답해줄 수 없었다. 그저 나비를 살며시 들어올려 꼬옥 안은 뒤 머리를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나비도 이해했는지 그냥 내 품에 안겨있었고 우리들은 집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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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올리는 글입니다~ ^-^
그러니까 자그마치.... 왠지 얻어맞을 것 같으니 날짜는 세는 건 그만두죠 -_-
뭐, 하여튼 이제 제대로 된 이야기로 들어가야겠죠? ^^;;
지금 쓰는 대로 쓰면 어느 정도의 분량은 나올 것 같습니다
이번 편이 좀 짧은 건 슬럼프와 기숙사의 영향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그나저나 2월달 내로 완결내서 투고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_-
뭐, 제가 언제나 그렇죠 아하하....
하여튼 제대로 다 쓰는 게 중요한 거 같습니다 ^^;;;;;
그럼 기숙사에서 잠깐 집에 올라온 산바람은 이만 사라지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0^

p.s 아, 참... 오늘 화이트데이였죠? -_-;; 드릴 분들이 없으니 이 글을 보시는 모든 여성분들께 마음으로나마 사탕을 드립니다... 거절하시려면 강하게!!(응?) 어머니껜 벌써 드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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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바람 | 2009/03/14 13:36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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